갑오징어 눈동자는 낮에 W나 U 모양을 띤다. 이로 인해 난반사가 심한 위쪽 빛보다 먹이가 주로 지나는 아래쪽 빛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미 몬테레이 베이 아쿠아리움
국내 연구진이 오징어 눈을 모방해 눈부심 없이 원하는 대상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카메라를 개발했다. 장차 로봇이나 자율주행차가 조명 상태에 따라 시각을 조정하고 장애물을 쉽게 감지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과학기술원 송영민 교수와 서울대 김대형 교수, 부산대 이길주 교수 공동 연구진은 1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에 “갑오징어(cuttlefish)의 눈을 모방해 빛 조건에 상관없이 원하는 사물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카메라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갑오징어의 동공과 망막 구조 모방
갑오징어 눈동자(동공)는 밤에는 사람처럼 동그랗지만, 빛이 많이 비치는 낮에는 W나 U자 모양이 된다. 동공이 눈의 중심이 아니라 아래쪽에 있어 아래쪽 빛이 더 많이 들어온다. 덕분에 눈부심을 유발하는 위쪽 빛은 차단하고 주로 밑을 지나가는 먹잇감을 더 잘 볼 수 있다.
갑오징어 눈. 동공이 W자나 U자형이어서 먹잇감이 다니는 아래쪽 빛을 더 잘 볼 수 있다./미 몬테레이 베이 아쿠아리움
연구진은 같은 방법으로 구형 렌즈 앞의 조리개를 갑오징어 동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 카메라를 자율주행차에 장착하면 대낮에 위에서 햇빛이 내리쬐어도 난반사 없이 앞쪽 장애물을 잘 볼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갑오징어 특유의 망막 구조도 모방했다. 갑오징어는 모든 방향을 고르게 보지 않고 관심 있는 영역, 특히 이동하는 위치보다 약간 낮은 곳에 있는 먹잇감들을 주로 본다. 이를 위해 망막에서 아래쪽 빛이 들어오는 중심부의 상단에 줄무늬 형태로 광수용체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송영민 교수는 “카메라도 같은 방법으로 실리콘 광다이오드를 한쪽에 밀집시켰다”며 “필요한 영역만 고해상도로 관찰하면 전력을 덜 쓰고 영상 처리 속도는 더 빨라진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카메라에 편광(偏光) 선글라스 기능도 갖췄다. 태양광은 파장이 다양한 빛이 섞여 있어 사방으로 진동한다. 하지만 태양광이 어떤 표면에 부딪히면 전기장이 특정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편광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픽=손민균
빛이 물에 들어올 때에도 편광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갑오징어도 편광을 구분할 수 있도록 망막에 일종의 편광판에 해당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메라에도 편광 필름을 붙여 사물의 명암 대비를 높이고 더 선명한 영상을 얻었다.
연구진은 “갑오징어 모방 카메라는 수평으로 120도까지 움직이는 사물을 추적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했다”며 “이동형 로봇이나 자율주행차의 인공 시각에 적합하다”고 밝혔다.
◇곤충, 물고기, 농게 모방한 카메라도 개발
송 교수는 “생물의 눈은 서식지와 생활환경에 따라 최적의 상황으로 진화했다”며 “인간이 만든 카메라도 앞으로 용도에 적합한 다양한 형태로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서 곤충과 농게, 물고기를 모방한 카메라도 개발했다.
광주과기원 송영민 교수는 미 일리노이대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2013년 네이처지에 곤충의 눈을 모방해 160도 시야가 가능한 카메라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미 일리노이대
송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2013년 존 로저스 교수와 함께 곤충의 눈을 본뜬 초광각(超廣角) 디지털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사람이나 일반 카메라가 볼 수 있는 각도 범위는 50도에 그치지만 곤충 눈 카메라는 160도 이상이다. 곤충 눈 카메라는 지름 0.8㎜의 마이크로 렌즈 180개가 지름 1.5㎝의 돔 구조로 배열된 형태다. 곤충의 눈이 수많은 홑눈이 모여 하나의 겹눈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다.
송 교수와 김대형 교수, 이길주 박사는 2020년에는 ‘네이처 전자공학’에 물고기 눈을 모방한 카메라를 발표했다. 드론이나 자율주행차는 시야가 넓은 어안(魚眼) 렌즈를 장착한다. 보통 렌즈가 10개 이상 들어가야 광각이 확보된다. 연구진은 물고기가 돌출된 수정체와 반구형 망막을 갖고 있는 것을 모방해 구형 렌즈와 반구형 이미지 센서의 조합으로 120도 광각을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갯벌에 사는 농게의 겹눈 구조를 모방한 수륙양용 카메라를 개발해 역시 네이처 전자공학에 발표했다. 농게는 물이 빠졌다가 차기를 반복하는 곳에 살아 눈이 물속이나 물 밖에서 모두 작동한다. 반면 기존 곡면 카메라 렌즈는 빛의 굴절 때문에 물속과 물 밖에서 동시에 영상을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서해 갯벌에 사는 농게(왼쪽)의 눈을 모방한 수륙양용 카메라(오른쪽)./조선DB, 광주과학기술원
연구진은 농게의 눈처럼 표면이 납작한 마이크로 렌즈를 만들고 각각 이미지 센서를 연결했다. 이렇게 만든 렌즈 복합체 200여 개를 지름 2㎝인 공에 붙였다. 송영민 교수는 “360도 카메라로 실제 영상 시험에 성공했다”며 “앞으로 자율주행차나 가상현실(VR) 영상 시스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언스 조선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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