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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게·갑오징어의 눈’ 모방한 카메라 개발, “자율車에 적용”


지스트(GIST·광주과학기술원) 플렉서블 광전자 연구실 연구원들과 송영민(가운데) 교수가 열화상 카메라로 열복사 소재의 특성을 분석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지스트(GIST)


필름 카메라 시대에 번창했던 사진관의 암실(暗室)이 여러 개 붙어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난 6일 지스트(GIST·광주과학기술원)의 ‘플렉시블 광전자 연구실’에 들어서자 검은 막으로 각각 둘러싸인 큐브형 연구 공간들이 펼쳐졌다. 각각의 암실에는 현미경과 카메라 렌즈, 광 검출기, 측정 기기 등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중 한 곳에 호두를 절반 크기로 축소한 듯한 구슬 모양의 초소형 렌즈가 눈에 띄었다. 농게의 눈을 모방해 만든, 수륙양용으로 360도 전방위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다. 또 다른 암실에는 갑오징어 눈에서 착안해 조리개가 W자 형태로 개발된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그 옆의 암실에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렌즈를 실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동물의 눈을 모방하는 것인지 물었더니 “지금 알려지면 다른 나라 연구실에서 가로챌 우려가 있다”며 비밀로 해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동물 눈 모방해 자율주행차에 적용


플렉시블 광전자 연구실을 이끄는 송영민 지스트(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가 공동 연구를 통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논문으로 공개한 카메라는 갑오징어(cuttlefish)의 눈을 모방한 것이다. 빛이 많이 비치는 한낮에 눈동자(동공)가 알파벳 W 또는 U자 모양으로 변하는 갑오징어에게서 착안해 카메라 조리개를 W자 형태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위에서 내리쬐어 눈부심을 유발하는 빛이 차단돼 정면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송영민 지스트 교수는 “대낮에 햇빛이 불규칙하게 내리쬐는 상황에서도 전방을 뚜렷하게 볼 수 있어 자율주행차에서 장착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번에 연구진이 개발한 카메라는 갑오징어 망막 구조도 모방해 원하는 영역을 고해상도로 관찰하면서 전력 소비는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드론이나 로봇에도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앞서 지난해 지스트 플렉시블 광전자 연구실이 개발한 360도 전방위 수륙양용 카메라는 농게 눈의 구조에서 착안해 만든 것이다.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에는 뭍이 드러나는 지역에 사는 농게는 물속과 물 밖에서 두루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 기존 렌즈는 빛의 굴절 때문에 물속과 물 밖에서 동일하게 보기 어려운데, 농게 눈의 구조를 적용해 수륙양용으로 활용 가능한 렌즈를 개발했다. 또 돌출된 눈이 겹눈 구조여서 사방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농게를 모방해 360도 전방위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로 완성시켰다. 두 개 이상 카메라의 영상을 합치는 방식으로 360도 화각(畫角)을 구현한 기존 카메라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이를 높이 평가한 과기정통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송영민 교수를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사하라 은개미 모사한 냉각 기술 개발


플렉시블 광전자 연구실 한편에는 사하라 사막 은개미(Saharan silver ant)의 털을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이 있다. 사람의 머리카락이 길쭉한 원통 형태인 것과 달리 사하라 은개미 털은 삼각기둥 모양이어서 체내 복사열을 외부로 효과적으로 방출한다. 지스트 연구진은 이러한 털 구조에서 착안해 복사열 방출로 온도를 낮추는 ‘복사 냉각 필름’을 개발했다. 아직 대량생산 체계에 이르진 못했지만 건물, 차량에 필름을 부착해 에너지 절감에 기여할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하고 있다.


유해 물질이 닿으면 색이 변하는 컬러 센서도 개발했다.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비롯해 다양한 유해 물질을 빠르게 감지할 수 있도록 한 연구 성과로 꼽힌다. 송영민 교수는 “동물의 눈, 털, 날개를 비롯해 각종 부위는 서식지와 생존 여건에 최적화되어 있다”며 “이를 참고해 각각의 용도에 맞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곽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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